WRITER · DOGAREUM

도가름
소설 · 에세이 · 비평
STATEMENT
세계와 불화하면서도,
끝내 누군가와 접속하기 위해 씁니다.
01 / ABOUT
[23세 여성, 친부와의 불화, 중년 남성에 대한 페티시, 50대 이상의 남성과 교제를 반복]
남성이 침을 튀기며 거래처 사장이 근본부터 글러먹은 놈이라는 둥, 그게 다 미국물이 들어서 그런 거라는 둥 열변을 토한다. 앞에 앉은 여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머리카락 한 가닥이나 집어 배배 꼬곤 풀기를 반복하는 정도? 이내,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고는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놀이를 시작한다. 키는 비슷하다. 애초에 부친도 딱 한국 남성 평균의 신장이었으니까. 체중도 비슷한가? 부친 쪽이 좀 더 근육질이었던 것 같다. 거래처니, 부하 직원이니 뒷말하기를 좋아했던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직업은 좀 다르다, 부친은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이 남자는 사업가이니까. 명품을 두르기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여자를 레스토랑이 아닌 부대찌개집에 데리고 오는 것도 비슷하다. 총점 70% 정도다. 화제는 남자가 성공적으로 따낸 계약으로 넘어갔다. 여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을 한 모금 하고는 결론을 내리려 애쓴다. 비슷해서 기쁜가? 혹은 충분히 비슷하지 않아서 아쉬운가… 정말로 똑 닮았더라면 여자를 때렸을 것이다. 제 자랑을 늘어놓으면서도 여자를 모욕하곤 했겠지. 그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고, 차이점이야말로 공통점보다도 중요할지도 모른다. 여자는 휴대폰께를 곁눈질한다. 그래도 부족하다. 닮아서 부족한 것일지, 닮지 않아서 부족한 것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과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여자는 귀갓길, 데이팅 어플에서 지난한 탐색을 치를 각오를 한다.
[26세 남성, 학벌 콤플렉스, 대학수학능력시험 5수중]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 속에서 뿅뿅거리는 전자음이 터져나온다. “크리티컬-!” 전형적인 용사 복장을 한 캐릭터가 잡몹들을 단숨에 쓸어버린다. 남자는 그 모습을 멀거니 내려다보다가, 습관적으로 책상 한구석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떨어트린다. 담배가 다 떨어진 지 오래이다. 입에 물 담배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휴대폰을 집어들고는 밖으로 나선다. 이 방구석에 계속 버티고 앉아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 종이 더미, 방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문제지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놓여있기만 할 뿐인데도 남자의 신경을 긁는 재주를 보였다. 정성스레 오답노트까지 꼼꼼히 붙은 맨 아래의 권들부터, 한 두 문제나 풀려있을까 싶은 위쪽까지. 전부 남자의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노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려다 이내 실패한다. 위로가 성공하려면 담배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담배는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치다.
[35세 여성, 사이비 종교 저작물에 심취, 수분을 극단적으로 섭취, 심부전 증세를 보임]
여자는 정신이 반쯤 나가 응급실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에서도 품에 쥔 책을 놓지 않았다. 그것을 뺏으려 든 모든 사람들이 실패했다. 여자는 혼미한 정신으로 생각한다. 아무도, 아무도 나를 진실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 그것은 의료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 자식들, 부녀회에서 가끔 얼굴 보는 동네 아줌마들마저도 해내지 못한 것이다. 아니, 그들이 해내지 못한 게 아니라, 여자가 기를 쓰고 사수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하겠다. 여자는 희미한 자부심을 느꼈다. 아무도 여자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찾아드는 이유모를 미열들, 사금파리 조각들이 혈관을 득득 긁고 지나가는 감각들을, 동네 의사들도, 네이버 지식인도, 피를 나눈 가족들마저도… 물만이 응답했다. 그리고 그런 물을, 여자는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형사들은 잠시 침묵한다. 연초 타는 연기가 방 안을 희끄무레하게 흐린다. 종이를 든 사내가 입을 연다.
“이게 다 사실인가?”
곁에 선 남성이 볼을 긁적인다.
“아니요,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지요. 장본인들도, 우리도요.”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려가며 고심하더니 덧붙인다.
“그리고, 이 편이 더 재밌지 않습니까?”
02 / RECOMMEND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