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브 라이트가 번쩍인다. 툭툭 끊기는 상이 시야를 덮친다. 사라진다. 다시 덮친다. 다시 사라진다. 어깨를 흔드는 이미지, 스쳐지나가고, 또 다시 머리를 휘젓는 여자, 뿌리염색이 필요해보이는군, 스쳐지나가고, 내내 우퍼 진동이 흉통을 울린다. 내장까지도 덜덜거리는 감각, 무대 쪽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금세 비트에 묻히고, 헤드뱅잉을 하던 여자가 결국 부딪혀온다. 이런 시발. 술이 가슴팍에 쏟아졌다. 와중에 알코올 냄새가 비강을 덮쳐온다, 몇 모금 마시지도 못했는데. 반사적으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본인에게조차 들리지 않는다. 몸들은 아랑곳않고 계속 어깨나 등 따위에 부딪혀온다. 취하지 못한 게 죄지! 뻘겋게 그리고 퍼렇게,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얼굴들을 겨우 헤쳐 빠져나온다. 시급 만이천원짜리 알바생이 손짓하더니 입을 벙긋거린다. 이 새끼, 뭐라는 거야. 알바생이 다시 입을 벙긋거린다. "안 들려요!" 안 들린다는 말이 안 들린단다. 맥스는 시발! 하고 소리지른다. 그마저도 듣지 못한 듯 하다. "술 쏟았어!" 플라스틱 컵을 알바생에게 내밀었다. 알바생은 알 수 없는 손짓발짓을 하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누런 바 조명과 무대에서 뻗어나오는 라이트의 힘을 빌려 맥스는 간신히 표정을 읽어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화만 더 난다. 무대에서는 DJ가 마이크를 쥐고 랩을 시작했다. 망할 놈의 힙합 믹스. "더 드려요?!" 그러고는 손을 내민다. 카드 달라는 거 같다. 됐어 새끼야, 돈 없어. 뒤에서 여자가 안 살 거면 꺼지라고 눈치주는 게 느껴진다. 아 간다고. 존나게 쪼아대네. 빈 컵을 낚아채고는 흡연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담배 쩐내. 고향처럼 익숙하다. 성질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신경질적으로 한 대 입에 물었다. 돛대다. 닫힌 문을 뚫고 개같은 랩이 흘러들어온다. 뭔 보컬 볼륨이 비트보다 커, 테크노를 할 거면 테크노를 하고 힙합을 할 거면 힙합을 하라니까. 이딴 걸 디제잉이라고 들려주다니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담배 한 갑 정도. 냉방을 풀파워로 돌리는 지하와 달리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짜증이 다시금 일어날락 말락한다. 실내 흡연실이 있긴 했는데, 애새끼들이 자꾸 섹스를 해대서 폐쇄됐다. 방 잡을 돈도 없는데 클럽을 오기는 왜 와. 새로 한 타투가 땀에 젖어 근지럽다. 긁을까, 말까. 30만원짜리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번지는 꼴을 보고싶진 않은데. 이번 달 최고의 난제다. 고심하고 있노라니 소리가 들려온다. 말소리... 아니 울음소리...?

가로등 건너 건너 여자애 한 명이 있다. 높게 올려묶은 양갈래, 블라우스에 짧은 치마, 여기저기 달려있는 레이스, 우와, 멘헤라다. 평소에 엮일 일이 자주 있는 부류는 아니다. 가뭄에 콩 나듯 관객으로 오기는 하는데, 애들 정신상태가 좀, 꼬롬하긴 하니까. 사돈 남 말 속으로 중얼거리던 맥스는 머리 벅벅 긁으며 고민, 아니 사실, 고민이랄 것도 안 하고는, 건들건들 다가갔다. 울던 여자애가 속눈썹에 눈물 방울방울 매달고는 새초롬하니 올려다본다. 존나 예쁘다. 심심하던 차에 이벤트 발생, 정도의 감각으로 다가가던 맥스는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얘만큼 예쁜 애는 3년 전에 섹스 몇 번 하고 지냈던 미친년 정도밖에 못 봤는데. 예쁜 여자애들은 다 약간 미친년인 건가? "이 옆에 클럽 있는 거 알아?" 알겠지, 바깥 흡연장까지 진동이 울리는데. 기다란 속눈썹 두어 번 깜빡이던 여자애가 대답한다. "가본 적은 없어요." 윤 흐르는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이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제 꼴이 걱정된다. 이 티셔츠 일주일 전에 빤 건데, 생각해보니 아까 술까지 흘렸다. 내심 초조해져서는 담배 갑을 뒤적이다가 기억해낸다. 아까 돛대였지.

고개를 문득 들어 확인해보니 여자애가 불쑥 다가와있었다. 거의 숨결마저 느껴질 정도의 거리. 우왓, 깜짝이야, 하고 몸을 들썩이려는 찰나, 여자애가 방긋 웃는다. "이렇게 보니까 생각보다 예쁘네." 그러더니 두 손으로 맥스의 얼굴을 붙잡는다. "길거리에서 주운 것 치고는, 아니지, 딱 봐도 예쁘니까 주울 마음이 든 건가?" 이리저리 맥스의 얼굴을 돌려가며 요모조모를 뜯어본다. 단순히 집요한 것을 넘어서서 얼굴에 끈적하게 들러붙는 시선. 시발, 진짜 미친년인가. 벗어나려 목에 힘을 줘도 역부족이다. 조막만한 여자애가 보기보다 힘이 세다. 아니, 힘이 센 수준을 넘어서는 거 같은데... 손을 뜯어내려 해도 미동도 않는 게, 거의 벽을 미는 느낌이다.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가? "저기, 우리 친구, 아가씨, 아니 선생님, 갑자기 이러면 곤란한데," 듣는 척도 안 하더니 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 한 명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계획에는 없었지만, 원래 가족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것 아니겠어?" 지금, 나랑 애를 낳겠다고 한 건가? 등골에 소름에 오소소 돋아온다. 정색하고 화내려는 찰나, 물론 화낸다고 이 초인적인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여자아이가 힘을 주어 맥스의 머리를 숙이더니, 목덜미에 머리를 파묻어온다. 훅 풍기는 쇠의 비린내, 그리고, 살결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증. 씨발, 물었어!

다급히 어깨, 팔 따위를 더듬어가며 밀어내려도 여전히 밀리지 않는다. 박은 고개 새로 숨이 피부에 풍기는데, 문제는 전혀 따뜻하지가 않다는 거다. 말캉한 혀가 상처 새로 스치고는, 이빨을 더 깊이 박아넣더니, 빨아들인다. 시발, 시발, 시발, 말 한 번 잘못 걸었다가, 이게 무슨 꼴이지. 형들이 너 그런 식으로 살다가 언제 한 번 큰 코 다친댔는데, 정말 그 짝이다. 기묘한 감각, 피가 잘못된 방향으로 역류해 세차게 흘러나가는 감각이 목덜미를 중심으로 번지더니, 이내 온 몸을 덮친다. 온몸의 피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 안에 담겨있어야 할 것이 밖으로 새어나온다. 쏟아진다. 긴장해 힘이 바짝 들어갔던 몸이 살살 늘어지고, 아니 늘어지는 감각조차 희미해지고, 생각마저도 희미해지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거부도 저항도 아닌 느릿한 신음소리. 목이 졸리는 것처럼, 애무당하는 것처럼... 여자아이가 키득이는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돈다. "그렇게 좋아?" 좋겠냐든가, 나한테 왜 그러냐든가 하는 생각조차 들려다가 사라지고,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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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거칠하다. 얼굴에 맞닿은 면이. 아니, 바닥인 거 같다.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다. 좀 전에 당한 일이 순간 플래시백 되고, 시발, 빈혈인가. 힘을 주니 움직인다. 피가 통하지 않은 것 뿐이었다. 그러니까, 바닥에 고꾸라져 있어서.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떠보니 먼지투성이의 바닥이다. 여기에 얼굴을 문대고 있었단 말인가? 힘을 주니 어떻게든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다. 설 정도는 아니고, 앉은 채로 상체만 겨우. 어질어질해서 몸을 가누질 못하겠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된다. 웅웅거리며 환기구 돌아가는 소리, 희미하게 비치는 뻘건 조명, 코를 스치는 콘크리트 냄새... 무엇보다도 목이 탄다. 아니, 목이 타는 게 아니다... 담배를 일주일 정도 참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 혹은 오줌을 5시간정도 참았을 때라든가, 둔중하게 등골을 휘감는다.

"또 애를 만들려고?" 낮은 목소리가 뒤통수를 덮친다. 인기척도 없었는데, 누군가 자신과 함께했다는 감각에 놀라 뒤돌아보면 정장을 빼입은 남성 한 명과, 예의 여자아이. 그래, 그 미친년, 내 피를 빨아먹었던! 경악해서 따져물으려던 맥스의 뇌 뒷편에서 생존본능이 사이렌을 삐용삐용 울린다. 너 진짜 쟤한테 대거리할거야? 얼마나 힘이 셌는지 떠올려 봐. 얼마나 미친년이었는지도 떠올려 보라고. 치열하게 짱구를 굴리고 있노라니 여자아이가 대답한다. "음, 그러지 말라고 했던 거 알지. 아는데, 저건 좀 갖고 싶더라고. 그렇게 생겼잖아?" 남자가 마른 한숨을 내쉰다. "난 네 취향을 모르겠다가도 모르겠어... 그리고 기억 안 나? 너 애들 만들기만 하고 하나도 관리 안해서 다 죽어나가잖아. 그, 티아? 걔도 지금 생사를 모르지 않니?" 여자아이가 어깨를 으쓱한다. "이번엔 진짜 잘 할 자신 있어. 진짜 마음에 든단 말이야." 이 모든 한담을 엿들은 맥스로서는?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맥스는 눈을 남자에게로 뒀다가, 여자아이에게로 뒀다가, 다시 남자에게로 뒀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연다. "저기, 저는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저 공연 해야 하는데 말이죠... 제가 오늘 메인 DJ입니다..." 자동으로 장착된 예의에, 가오 다 죽었다 싶다... 사실은 공연보다도, 허기가, 갈증이 너무나도 강렬하다. 너무 허기져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빨리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서 맥도날드라도 가야만 하겠다. 여자아이는 그제야 맥스를 보더니, 그 예쁘장한 얼굴로 활짝 웃어보였다. 시발, 지하실이 갑자기 한 톤 밝아지는 느낌이다.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딴 식으로 느끼다니, 자기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오, 자기야,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같지 않니?" 그러고는 성큼성큼 맥스에게로 걸어온다. 시발, 왜 오는 거야, 오지 마,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잡혀서는, 머리채를 붙잡힌다. 또 물리나? 또 물리는 거야! 맥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예상한 통증과 달리, 턱이 우악스럽게 붙잡혀서는 벌려진다. "배고프지? 엄마가 주는 첫 모유란다..." 가죽 따위가 부욱 베이는 소리와 함께, 비강을 냄새가 덮친다. 비릿한, 철의 냄새, 아까 여자아이한테서 났던... 조금 다르다. 날 것의, 몸의 냄새가 난다. 벌려진 입 속으로 액체가 후두둑 떨어진다. 차갑고, 척척하니 약간 무거운 액체, 비린 맛, 피다. 문제는, 하나도 역겹지가 않았다. 아니, 맥스의 몸은 숫제 환희에 가득차서는, 손 쓸 도리도 없이 떨리고, 반사적으로 그것을 삼켜넘긴다. 갈라진 논밭이 물을 계속해서 빨아들이듯, 맥스의 몸은 피를 게걸스럽게 탐한다. 갈구한다. 전혀 먹음직스럽지 않은 풍미임에도 불구하고, 쇳물을 들이키는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몸에게 이것이 필요하다... 여실히 느낀다. "옳지... 우리 아기 잘도 먹네," 귀여워라... 머리채도 어느 순간 놓고는 뒷통수를 살살 쓰다듬어온다, 거의 개 따위를 쓰다듬듯이. 맥스도 이젠 거의 나나의 팔을 두 손으로 붙들고, 코를 쳐박고는 핥아댄다. "아하하! 귀여워! 이안, 이거 귀엽지, 그렇지 않니?" 존엄이 박살나는 것마저도 신경쓰이지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더... 포만감이 아주 지척에 있는 것만 같다가도 아주 멀게만도 느껴진다. 신기루마냥. 뒷통수 너머에서 남자가 두 번째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발걸음이 가까워진다.

"그만." 뒷덜미를 붙잡아 떼어낸다. 켁, 하고 목이 졸리며 떨어진 맥스는 정신 못 차리고 두 팔을 휘젓는다. 아아, 조금만 더 마시면, 배부를 것 같았는데... 남자가 혀를 차더니, 맥스를 바닥 저 편으로 집어던진다. "그만하면 됐어." 많이 마시긴 했는지, 여자아이가 약간 비틀거린다. 남자가 서둘러 다가가 여자아이를 부축한다. 갈증이 좀 가신 그제야 조금 머리가 굴러간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배가 고팠다. 그래서 피를 마셨다. 존나게 맛있었다. 그런데도 배고프다, 몇 리터는 마신 거 같은데 여전히 배고프다!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제야 깨닫는다. 제 피부가, 따듯하지 않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저기... 피, 주신 건 감사한데요, 제 심장이 안 뛰는 것 같아요..." 놀라서 씨근덕거릴래도,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숨을 쉬는 법을 온통 까먹은 것처럼, 제 몸에 원래부터 숨을 쉬는 기능이 없었던 것처럼. "설명해주실 분? 선생님이 저를 죽인 건가요? 이거 사후세계인가?" 시발, 어쩐지 지옥에 갈 거 같더라니. 여자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바보구나! 아니, 그렇게 생기긴 했지만, 이 정도로 바보일 줄이야!" 괜찮아, 그런 점이 귀여운 거야, 하고 이어지는 말에, 아니, 심장 안 뛰는 게 얼마나 큰 일인데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가? 억울해서 화를 내려다가, "너, 흡혈귀 된 거야. 뱀파이어 된 거라구." 하는 말에 순간 굳는다. 흡혈귀? 흡혈귀??

여자아이는 부축하는 남자를 뿌리치고 제 발로 서서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엣헴," 하는 소리를 내더니 선언한다. "그리고 내가 네 엄마란다. 이름은 나나지만, 앞으로 엄마라고 부르렴." 엄마는 지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맥스는 할 수만 있다면 오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