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구름 사이를 날아간다. 날아간다, 날아간다... 그러더니 중간에 멈춰서고는, 마네킹마냥 정자세를 취하더니 사라진다. 뭐야, 시발.

"저런 지 좀 됐어. 중간에 애니메이션이 자꾸 초기화돼서 그래."

다시 생겨나서 날아가기 시작하는 비둘기를 꼬라보고 있노라니 옆의 아저씨가 말을 붙여온다. 옆에 있는 줄도 몰랐다. 아니, 그 이전에 여기가 어디지? 존나 처음 보는 동네, 보도블럭과 담벼락에 낙서니 얼룩이니 가득한 게 좀 후진 동네같은데.

"그래도 다행이야, 비둘기한테 버그가 생긴 거라서. 우리 모델에 저 버그가 생겼다고 생각해봐. 30초마다 한 번씩 저 웃기지도 않는 자세로 서야 한다고."

재키는 인상을 찡그리고 아저씨를 노려본다. 좀 똑바로 말하라는 위협은 전혀 통하지 않고,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웃는다. 원래도 친절해 보이던 인상이 이제는 푸근해보일 정도다.

"아직 잘 모르겠지? 이번에 새로 업로드됐으니까 모를 만도, 그래서 이 강래리가 설명해주러 왔다 이거야."

동네만 후진 게 아니라 이 아저씨 이름도 후지다. 업로드인지 뭔지, 뭐 하는 씹덕 세계관, 아니 정신병 세계관인진 몰라도 재키가 감당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재키는 위협하기를 포기하고 대꾸도 않고 등을 돌렸다. 방금 비둘기는 뭐, 눈 건강이 나빠졌다는 신호거나, 서서 꿈을 꾼 거거나... 혹은 저에게 정신병이 생긴 거거나. 이런 제길, 정신병은 싫은데. 사촌누나가 정신병에 걸려서 지랄 개지랄을 떠는 것을 관전한 이후로 재키는 정신병이라면 학을 뗐다. 이래저래 걱정을 해보아도, 서서 존 것일 확률이 높았다. 아마 성장기, 뭐 그런 거겠지. 성장기면 잠을 많이 잔다니까.

뒤에서 래리인지 매미인지 하는 아저씨가 뭐라뭐라 불러댔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휴대폰은 또 왜 없어? 재키는 한숨을 내쉬고는 버스 정류장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정류장 이름을 보면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겠지. 눈 앞에 놓인 길에는 똑같은 주택, 주택, 주택, 똑같은 담벼락, 담벼락 담벼락, 똑같은 낙서, 낙서, 낙서... 터덜터덜 걸어나가던 재키는 두 눈을 의심한다. 낙서가 똑같다. 아니, 그러니까, 무슨 할 짓 없는 인간이 담벼락마다 똑같은 낙서를 해둔 게 아니라, 스크래치 자국, 스프레이가 튄 모양새까지도 모두 똑같다. 무슨 복사 붙여넣기 한 것 마냥. 이런 시발, 이거 꿈인가? 무슨, 자각몽? 가위 눌린 건가? 그럼 아까 아저씨는, 뭐, 내 무의식의 대변자? 내 무의식이 만만해 보이는 인상의 아저씨라니, 그럴 리가 없는데.

가만히 서서 두 눈 질끈 감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30초는 했을까? 꿈이 아닌가, 아니면 내가 자각몽 유도를 잘못하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 때 즈음. 띠롱. 눈 앞을 글자가 가린다. [전자-멍멍 소리를 내는 전자-강아지!] 동시에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서라운드로 귀를 덮친다. 아니, 눈 [살아있는 강아지를 키우기란 귀찮은 일이 맞습니다!] 감고 있었는데, 글자가 어떻게 [똥도 치워줘야 하고, 산책도 해야 하고, 개 냄새도 나는 데다 심지어는 초콜릿을 먹으면 죽기까지 하죠!] 눈 앞에? 이런 시발, 좀 치워 [세상에, 상상이나 되십니까? 초콜릿을 먹으면 죽는답니다! 그 달고 맛있는 거를요!] 봐! 씨발, 뭔 개좆같은 광고가 뇌에서 재생되는 [이제는 그 모든 귀찮음, 불편, 위험을 감수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병이라니, 듣도 보도 [살아있는 강아지는 가라, 이제는 전자-강아지의 시대다!] 못했다. 픽셀로 이루어진 강아지가 멍멍 짖는 애니메이션까지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시발, 돌 [당신이 어딜 가든 따라다니죠, 당신이 먹는 음식이라면 뭐든 먹을 수 있고요!] 겠네. 한참을 눈을 질끈 감고, 물론, 감아도 보이니까 소용은 없지만, 기다리자, 음성도 텍스트도 가신다. 휴, 끝났나? [그리고 외발자전거를 타는 묘기까지 부린답니다!] 씨발!

"그러게, 왜 말도 않고 가나, 학생!"

옆에서 헥헥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래리다. 광고가 정말 진짜 최종적으로 끝나고 한참이나 멍을 때리고 있노라니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 투실투실한 체격 때문에 뛰어온다기보다는 뛰려고 애쓰는 모양새였지만. 그래, 저 아저씨라면 무언가 할 말이 있겠지, 누구라도 좋으니 나에게 설명을 내놓아라. 그런 마음으로 친히 기다려주었더니 뛰느라 지쳐갖곤 몸도 못 가누고 팔 따위를 붙들어온다. 재키는 팔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다. 이번엔 저가 아쉬운 처지이니까.

"방금 저 광고 봤어요. 휴대폰으로 말고요, 길거리 전단 말고요. 무슨 뇌 속에서 재생한 것마냥...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그리고 비둘기도, 그리고 낙서도, 더 단서를 꺼내놓기도 전에 래리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바로 그거야, 학생. 광고를 봤다면 말이 쉽겠네."

뭐가 쉽다는 거야? 다시 버릇처럼 인상을 쓰려던 찰나, 래리가 좋은 소식,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듯 발랄하게 외친다.

"학생은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