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깃털의 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조류 특유의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 괜히 발치의 돌 부스러기를 쪼고는 다시 고개를 쳐들고는 허공에 휘적거리기를 반복한다. 노먼은 하릴없이 그 꼴을 지켜보다 앞자리의 헛기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서는 시선을 바로잡았다.

“그러니까, 세이프워드는 까마귀에요. 기억하실 수 있나요?”

까-마-귀. 여자는 일부러 각 어절을 길게 늘여 다시 발음해온다. 넋을 잠깐 빼고 있었더니 순 바보로 보인 모양이다. 노먼은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당연하죠,” 하고 대답했다.

“좋아요, 피 나는 건 NG. 가벼운 스팽 정도만.”

엉덩이나 찰싹찰싹 때리겠단다. 노먼은 가벼운 아쉬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더 심한 짓도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노먼은 머리채 한 번 잡혀본 적 없다. 그리고 이제 잡히게 될 테지. 노먼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될 영광의 주인공, 메리는 끼적이던 것을 마치고는 노먼에게 건네준다. <계약서>. 악필로 쓰인 제목과 함께 일곱 가지 정도의 사항들이 세심하게도 넘버링까지 되어 차례로 이어진다. 노먼은 옷을 벗는다, 메리는 옷을 벗지 않는다, 세이프워드는 까마귀, 15시에 시작해서 16시까지, 삽입성교는 없다 등… 노먼은 차례로 읽어나가다 미간을 주무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는다. 아, 이게 맞나…

노먼은 보통 자신을 건실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한다. 만 35세, 군필,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아. 물론, 이제는 남”아” 라고 말하기엔 약간 겸연쩍지만. 노먼을 이 자리, 의자도 불편하고 커피도 맛이 없어 손님이라고는 그들 뿐인 카페로 이끈 계기는 한 달 전의 해피타임이었다. 당시 노먼은 컴퓨터 앞에 바지와 팬티를 허벅지께까지만 내리고 앉아, 소중한 것을 시원한 공기 중에 노출시키고는 쇼핑을 했다. 그러니까, 포르노 쇼핑을. 저를 클릭해달라고 외치는 온갖 자극적인 썸네일들, 여성의 가슴이나 음부가 이런 저런 행위를 당하는 장면의 나열. 그러나 노먼은 심드렁한 기분으로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렸다. 무언가 색다른 게 필요하다. 새로운 것, 짜릿한 것, 이 매너리즘으로부터 노먼을 구해줄 상상도 못했던… 그리고 노먼은 발견한다. 핫핑크색 밧줄에 단단히 묶인 근육질의 남성이 방 한가운데에 무릎꿇고 앉은 모습을. 드물게도 팬티를 착용 중이다. 눈마저 가리는 복면까지 뒤집어썼다. 나름의 절제된 미학을 주장하는군, 노먼은 생각하며 속절없이 클릭했다. 대체 꽁꽁 묶인 남자로 무얼 보여줄 수나 있단 것인가? 영상은 기대를 다른 의미로 충족시켰다.

남자가 계속해서 머리, 복부나 고간 따위를 얻어맞는다. 주먹질을 당하고, 발로 차이며 머리채가 잡혀 질질 끌려다닌다. 똑같이 복면을 쓴 여성들이 카메라 밖에서 나타나 뺨을 때리고, 온갖 도구를 사용해 작신작신 두들겨팬다. 남자는 처음에는 신음을 참는 듯 하더니, 욕설과 저주를 거쳐 종내에는 비명을 지르며 빌어댄다. 그만해주세요. 너무 아파요. 목을 몇 분간 졸리더니 기절한다. 팬티가 오줌으로 인해 축축이 젖어든 채로, 시멘트 바닥에 엎어져 미동도 않는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줌아웃하고는 영상이 끝난다. 노먼은 알아차린다. 자신의 팬티도 축축했다. 대신 오줌이 아닌 체액으로.

일단 영상의 링크를 소중히 즐겨찾기해놓고는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남자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궁금하긴 하니까. 어떤 느낌일지, 어떤 생각이 들지, 혹은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게 될지… 과연, 세계는 넓었고, 노먼의 상상 이상이었다. 너무 넓어서 문제지. 온갖 용어들, 멜섭이니 펨돔이니, 스팽킹이니 니들플레이니 하는 용어들이 범람했다. 노먼은 거의 게걸스럽다시피 할 정도로 그들의 문화를 학습해나갔다. 멜섭은 남자인데 피학성향이 있는 사람이고, 펨돔은 여자인데 가학성향이 있는 사람이고… 이, 말하자면 갯강구가 사는 바위 아래 그늘같은 세계는 양지와는 전혀 다른, 요상한 법칙을 기반으로 돌아갔다. 일단 펨돔들은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며 도도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 하위 피식자인 멜섭들은 계속해서 펨돔들의 계정에 좋아요를 찍고, 반응도 없는 댓글을 달아댄다. 발정이 난 것 같기는 한데, 제발 자기를 패배시켜달라고 빌어대는 발정이라는 게 문제지. 노먼은 제가 앞으로 이 최하위 피식자 무리에 합류하게 되리라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려다가, 그렇게 해서라도 쳐맞고 지배당해야겠다는 마음이 이해가 되려다가.

학창 시절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내가 서울대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희미하게 탄식하기도 했다. 웹을 탐방해가며 온갖 SNS, 경험담, 사진, 아마추어 영상물, 프로 영상물 가리지 않고 섭렵한 노먼이 결국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자신을 때려줄 사람을 구인하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노먼은 계약서까지 눈 앞에 들이밀어진 상황에 이르러서야 자문한다. 이게… 맞나…? 생각은 생각이고, 노먼은 펜을 들어 아래에 서명한다.

모텔 평일 대실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4만원 정도, 물론 노먼의 지갑에서 나갔다. 여자랑 시간을 보낼 때는 노먼이 내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번 만남은 노먼이 빌다시피 해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메리는 트위터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펨돔이다. 그녀에게 뺨 한 대라도 맞고 싶어 매일 디엠창을 두드리는 놈들이 한두 명이 아니리라고 노먼은 짐작한다. 당연하게도 노먼도 그 중 하나였다. 노먼이 간택된 것은 행운의 여신이 빛을 비춰준 결과가 분명했다. 그러니 기뻐해야만 한다. 노먼은 긴장과 기대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뇌었다.

메리는 자연스럽게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아선 노먼을 꼬라봤다. “자, 지금부터 시작할게요, 계약서에 적힌 대로.” 그러더니, 노먼을 위아래로 무례할 정도로 흝어보고는 내뱉는다. “뭐 해? 꿇어 이 새끼야.” 충격. 노먼은 이 상황을 따라잡지 못해 굳었다. 메리의 말이 속에서 다시금 재생된다. 꿇-어-. 아, 이 두 음절의, 명쾌한 명령.

그 뒤로는 대충 모욕 좀 당하고, 벗고, 다시 또 모욕당하고. 여자 앞에서 벗어본 경험이 적진 않지만, 옷을 다 갖춰입은 사람 앞에서 혼자만 벌거벗는 건 좀 민망했다. 털이나 튼살, 술로 인해 붙은 뱃살 따위로 생김새를 매도당할 때는 약간 곤욕이었다. 물론, 메리는 노먼을 실망시키기만 하지는 않았다. 생전 처음 맞아본 싸대기는 지난날을 원망하게 될 정도였다. 정확하게는, 이야, 어째서 지금껏 아무도 내 뺨을 후려주지 않았지? 하고. 고개가 한순간에 꺾일 정도의 세기였는데, 눈앞이 번쩍번쩍하고, 이명이 들려오고, 화들짝 놀라 움츠러드는 것 외에 아무 생각도 할 겨를이 없어지는 것이 아주… 예상 외였다. 노먼은 빠르게 발기했다. 그렇게 세게 때리기를 의도하지는 않았는지, 메리는 살짝 미안한 기색을 띠더니 강도를 약하게 해 두어 번 정도 더 때렸다. 아, 아까 그 맛이 아닌데. 노먼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대망의 스팽킹의 시간이 되자 노먼의 성기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메리의 무릎 위에 고간을 문대고 엎드려 엉덩이를 치켜들고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가죽 패들이 노먼의 거칠거칠한 둔부를 때리며 남긴 것은 화끈한 통증뿐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딱 그 정도? 뒤통수 너머로 메리가 아프냐든가, 빌어보라든가 하고 떠들어댔지만 노먼의 속을 채운 것은 실망감뿐이었다. 이게 맞나, 하는 의심에, 이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지며 메리는 당부했다. 멍이 들거나 상태에 이상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20분 전만 해도 여자 무르팍에 엎어져서는 엉덩이 얻어맞았던 사람이 아니라는 듯 멀끔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별인사했다. 물론 옷 밑까지 멀끔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실망은 실망이고 고통은 고통이라는 듯이 엉덩이가 얼얼했다. 이거 뭐, 기쁘지도 않고, 거슬리는 것만 늘었군 그래. 노먼은 귀가행 열차에 몸을 싣고는 빈 자리를 멀거니 쳐다보다 단념했다. 엉덩이를 의자에 문댈 자신이 없었다. 손잡이를 잡은 팔에 머리를 기대고서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두고는 생각했다. 나쁘진 않았어… 하지만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