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은 들떠서는 가지고 온 물건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뻘건 리본에 곱게 묶여있는 야구 배트. 알루미늄 재질이 빛을 받아 반딱인다. 메리는 잠시 침묵한다. 무언가 머뭇거리는 것 같기도, 노먼은 낯을 읽어내보려 애쓴다.
“제 생각은 그래요. 노먼 씨가 복싱같은 거나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저번에도 들었던 소리다. 하지만 복싱 상대는 노먼이 엎어져 뻗어있어도 아랑곳않고 패주지는 않잖은가… 메리는 대답도 듣지 않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먼은 품에서 또 한가지의 물건을 꺼냈다. 작은 플라스틱 약통. 졸피뎀, 겉면에 쓰인 글자를 읽은 메리는 표정 관리를 실패한다.
“제정신? 제정신 맞아요?”
메리는 간신히 이해한다. 수면제를 처먹고 후드려맞겠다는 것 같다고. 이내 자신이 이해해낸 것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서는 되묻는다.
“아니죠? 그냥 불면증 있다고 나한테 자랑하는 거죠?”
“아닙니다, 처음에 생각하신 게 맞습니다 메리 씨.”
황당해하는 메리와 달리 노먼은 낯빛 조금 변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들어보십시오, 메리 씨.”
그러고 이어지는 설명. 제가 만약에 배트로 맞다가 자세 한 번 잘못 취하면 부러지지 않았을 뼈도 부러질 수도 있다는 둥. 오히려 긴장을 빼고 가만히 있는 게 보다 안전할 거라는 둥. 메리는 그 말을 반쯤은 귓등으로 흘리며 이 인간이 대체 뭔 경로로 수면제를 구해왔는지나 그려보려다 만다.
“아니, 그러면 노먼 씨 잘 때 제가 뭘 해도 상관없다는 거에요?”
노먼은 기쁘다는 듯이 웃어보이며 응수한다.
“바로 그 무엇이든, 해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너무 놀라면 외려 침착해진다지, 이제는 분노도 회피하고 싶은 충동도 모두 저 편 너머로 사라지고, 이판사판이라는 마음만이 든다.
“이건 저한테 위험수당을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수면제를 먹는 것도, 쳐맞는 것도 모두 노먼인데 메리에게 위험수당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것을 제기한 메리도, 듣는 노먼도 모두 수긍하고야 만다. “지금 입금하겠습니다.” 명쾌한 돈 들어오는 소리. 메리는 속으로 씨발삼창을 내질렀다. 내가 지금, 뭐라고 말한 거고 이 인간은 그걸 왜 들어준 거지? 메리는 정신머리를 붙잡으려고 간절히 애쓴다. 스스로를 이 자리에 딱 붙어 버티게 만드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 개 미친, 주제도 분수도 모르는 마조히스트 새끼 앞에서 꼬리 말고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장장 5 페이지에 달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노먼은 벌써부터 배부른 표정이 되어 웃었다. 그 꼬라지를 보며 메리는 벌써부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예의 모텔에 들어서자마자 노먼은 옷을 벗어재꼈다. 메리가 신발도 벗기 전이었다. 전라가 되어 침대에 몸을 누인 노먼은 약통에서 수면제 두 알을 꺼내들어 보이더니, “정량입니다.” 하고서는 한 입에 털어넣었다. 그러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한 손에는 리본 묶인 야구 배트를, 다른 손에는 계약서를 들고 그 앞에 서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메리는 방에 들어선 이래로 처음으로 입을 뗐다. “자요?” 노먼은 색색거리는 소리를 십여 초 내더니 웅얼거렸다. “메리 씨…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방 안의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 제정신인 사람이 된 메리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를 간신히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디 제대로 내려놓으려는 성의도 없이 손에서 힘을 풀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배트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아 그래, 저 배트. 야구 배트 소리가 나왔을 때부터 판단을 잘못했다. 그 때부터 이 새끼도,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메리는 원망인지 뭔지 모를 마음에 노먼이 뻗어 누운 침대께를 흘겨봤다. 굉장히 평온해보이는 낯이었다. 메리는 신경질적으로 핸드백을 뒤져 담배를 찾았다. 아니면, 처음부터 문제였을지도. 인터넷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새끼 시식해보겠다고 연락 받아준 것부터 실수였는지도 몰라. 담배에 불이 잘 안 붙는다. 라이터에 기름이 다 됐나. 처음엔 작았던 코골이 소리가 점점 우렁차진다. 심지어는 이까지 가는 것 같다. 이, 시발, 메리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는 간신히 불을 붙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메리는 그 질문으로부터도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노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결정도, 책임도 지지 않고, 꿈나라로 도피한 그가 부러웠다. 니코틴이 뻑뻑하게 폐에 들어차는 감각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창 밖으로 희미하게,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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