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전, 노먼: 뺨 세게 때려주셨을 때 좋았습니다.

2분 전, 노먼: 엉덩이도 그 정도로 때려주셨으면 오히려 좋았을 수도 하는 생각이 드네요…

메리는 노트북 가장자리에 뜬 메신저 알림을 신경질적으로 지웠다. 엉덩이 운운하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걸 옆자리나 뒷자리 동기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가상의 뒷담화, 사생활 폭로, 에브리타임에서의 사이버불링까지 이번 달만 해도 열두 번째로 시뮬레이션한 메리는 눈치를 재빠르게 살피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되려 억울한 심정마저 들기도 한다. 이 인간은 오전 10시, 남들 다 일하고 삶을 사느라 바쁜 시간에 할 일도 없단 말인가? 강단에서는 교수가 어딘가 의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목소리로 PPT를 읽어나가길 계속한다. 그 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넘기며, 메리는 턱을 괴고 강의실 밖 어드메를 비스듬히 바라봤다.

남자는 많다. 메리가 가학적인 취향을 자각하고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점점 많아졌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먹듯이, 메리는 인터넷에서 남자를 골라먹었다. 패키징이 신기해서, 새로운 맛이 나와서, 친구가 추천해서, 그냥 땡겨서. 노먼을 고른 이유도 별다른 게 없었다. 예의 좀 차릴 줄 알고, 일상 얘기 자주 하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하드코어한 플레이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 기절한 남자 사진, 온갖 곳에 멍이 든 남자 사진, 심지어 사지가 기형적으로 꺾인 남자 사진까지 트위터에 공유하곤 했다. 예의를 갖췄다는 점에서 약간의 점수를 그리고 당시 메리가 많이 심심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아 고른 사람이었다.

지운 게 무색하게도 다시금 메시지가 뜬다. 반사적으로 짜증내며 지우려던 메리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멈췄다. 기프티콘. 그것도 치킨이다, 뿌링클 치킨. 그래, 이런 점도 노먼을 고른 이유 중 하나였다. 염치를 안다. 메리가 돈 받고 사람 때려주는 핀돔은 아니지만, 주제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사내들을 상대하다 보면 역시 정나미가 떨어지곤 했으니까. 메리는 뿌링클 치킨 메시지 알림도 지우고서는 보다 진지하게 노먼과의 지난 만남을 검토했다. 그래… 엉덩이 때리니까 발기가 죽었지… 좀 더 강한 게 필요한 것 같긴 했다. 초심자라고 좀 봐주었더니 기고만장해진 것 같군. 메리는 약간의 호승심을 느낀다.

5분 전, 메리: 당하고 싶은 플레이 정리해서 오세요.

노먼은 알림을 확인하고는 방해금지모드를 켰다. 휴대폰 속에서 그 얼마나 변태적인 이야기가 오가건 상관없다는 듯, 사무실은 평화로웠다. 본격적인 일감이 들어오기 전의 널널한 분위기. 파티션 너머 어딘가에서는 동료들이 강아지 얘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옆자리의 동기는 심드렁한 낯으로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다. 노먼은 탕비실 커피를 한 모금 하며 괜히 의식해본다. 아무도 상상도 못했겠지, 이렇게 멀쩡하고 건실한 청년인 내가 그렇고 그런 일들을 당한다는 것을. 노먼은 속으로 누구인지도 모를 청자에게 괜히 변명해본다. 성적인 쾌감까지 느끼진 않는다, 노먼은 야외에서 벌거벗는 노출증 환자들이랑은 다르니까. 그러나 일탈을 남몰래 행한다는 것을 의식할 때마다 등골에 스치우는 짜릿한 해방감이 있는 노릇이었다.

“노먼 씨, 제 자리로 잠깐 와보시겠어요?”

사수의 부름. 옆자리의 동료는 지레 놀라 브라우저를 끈다. 사수는 그 쪽에 눈길도 주지 않고 노먼을 기다린다. 노먼은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나 뒤따른다.

“자 여기 타임라인 보시면… 기한은 한 달 반 뒤이고요,”

모니터를 보여주며 사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노먼은 착실하게 세부사항을 메모하며 경청했다. 물론 사수가 이따 알아서 기획안을 따로 보내줄 걸 안다. 그러니 이건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에 가깝다. 지시사항들을 열심히 정리하다 보면 자신이 안전한 트랙 위를 달리고 있다는 감각이 피어오르곤 했다.

“이 부분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저번에는 사용자 경험을 제일 고려해서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아, 그건 제가 따로 정리해서 메일 드릴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결정할 것도, 책임질 것도 드물다는 점이 좋다. 노먼은 일전에 다짐했다, 웬만해서는 승진 욕심을 내지 않기로. 실제로 승진을 하는지는 노먼의 결정 권한 밖이라지만, 노먼은 지금 자리가 제 분수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노먼이 성숙한 어른이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노먼은 또 내심 스스로를 평가했다.

미리 낸 반차에 맞춰 나선 바깥은 더웠다. 사우나 굳이 돈 내고 갈 필요 없겠구만, 생각하며 노먼은 치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 벌려주세요~”

치과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를 녹색 의자에 몸을 뉘인 노먼은 두 손을 모아 배 위에 얹고는 입을 얌전히 벌렸다. 이내 천이 가볍게 얼굴 위를 덮는다. 잠깐 뇌리를 스치는, 복면 쓰고 무릎 꿇은 남자의 이미지. 치위생사가 머리맡을 오가며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 느껴진다.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그런 실없는 생각에 약간 들뜬 것도 잠시, 벌린 입 속으로 정체불명의 기구가 들어온다. 노먼은 가슴이 콩닥이는 것을 견디며 치아와 잇몸 새를 기구가 득득 갉아대는 것을 하나하나 소중히 감각했다. 여기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입을 벌리고 누워, 치위생사가 저에게 가하는 이런저런 짓들을 감내하는 것만이 노먼의 의무였다. 항거하래도 손을 들거나, 불분명한 소음을 기구 새로 간신히 흘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자유. 치과는 좋다. 편안하거나 즐거운 곳은 당연히 아니라지만서도, 노먼은 그 불편한 시간을 위해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노먼 씨의 치아에는 큰 이상이 없어서요…”

다른 시술을 받을 수 없겠느냐고, 제가 구강 상태에 걱정이 든다고 넌지시 말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지금껏 화이트닝이니, 치주치료니 하고 치과를 들락날락하기를 몇 개월, 노먼의 치아에는 가벼운 충치 하나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노먼은 다음 스케일링 예약을 잡았다. 그래도 물어볼 수는 있는 거니까. 물어보기는 잘 했다.

귀갓길은 퇴근 러쉬와 겹쳐 사람이 붐볐다. 지옥철이라 말하는 게 보다 정확하겠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서는 휴대폰 하나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다. 2호선이 보통 그러하듯 냉방은 되고 있는지가 긴가민가할 수준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하차니 승차니 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밀어대는 통에 겨를 없이 휩쓸리다 정신차려 보니 환승 통로였다. 어디로 향해야겠다는 의식 한 번 하지 않고도 도착했다. 노먼은 애써 정신을 차리며 개찰구를 통과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거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