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 마리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여기 축사에서 식용으로 자란 소가 있습니다. 갓 태어났을 때는 서 있기도 어려워하는 송아지였겠죠. 어미에게서든 젖병으로든 젖을 먹고, 처음 맞이하는 세상을 탐험하며 자라났을 겁니다. 그 세상이 다정하기만 했을 리는 없습니다. 상상해보자면, 비좁은 축사에서 몇 걸음 디딜 공간도 없이 자라났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것으로서는 새롭고, 놀랍고 배울 것들 투성이였을 겁니다. 많은 경험을 했겠지요, 즐거운 놀이, 애정어린 보살핌을 받는 순간들 뿐만 아니라 가축으로서 관리되고, 통제당하고 억압받는 시간들도 있었을 터입니다. 매 순간마다 서로 다른 감정을 느꼈겠지요? 즐겁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공포에 질리거나… 그 모든 경험들을 하고 그 모든 시간들을 보낸 소는 이제, 도살당해, 유통망을 거쳐, 조리되어 한 끼의 식사로서 저의 식탁에 올라옵니다.

자 여기서 의아해하실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채식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하시는 분들도 각기 다른 이유로 불쾌해하실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육식의 그 무참함, 비윤리성, 은폐되는 폭력성, 많죠, 지겹죠, 저도 압니다. 저는 고기를 먹을 때마다 잠깐이라도 이런 상상을 하는 편입니다. 제가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더래도 제 뇌에서 잠깐씩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가죠. 제가 죄책감을 느껴서일까요? 틀렸습니다. 저는 이런 이미지와 제 앞에 놓인 고기를 병치시켜 볼 때, 은근한 황홀감을 느낍니다. 감정을 느끼는 생명체 하나를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 그 생명체의 일생, 느껴온 감정들, 경험들 모두가 폭력적으로 맛이나 영양이라는 척도 아래 재배열되어 저에게 소비당한다는 것. 떠올리는 것도 행하는 것도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가학적인 즐거움이라고 비난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혹은 굳이 어쩔 수 없더라도 원치 않게 가학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는 바닥에 엎어져서 통곡하는 건, 좀 꼴사납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러면 죄책감도, 윤리적이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도 무의미하다는 말을 하려는 걸까요? 글쎄요… 저는 무엇이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이 지면을 빌려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행동을 촉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유의미한 시도이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는 어떤 식으로건 결백하거나 완전히 윤리적이기만 한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으니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그래, 포식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포식은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행위입니다. 원래 먹는다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요? 오오, 생명체로 태어난 비극이여? 음식을 넘어서서, 우리는 많은 자원들을 포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를 낳음당하게 만든 부모, 그들이 물려주는 금전적, 사회적 문화적 자원들. 부유하거나 빈곤하거나, 유전자, 신체조건, 교육, 가정이 위치한 지역적 인프라, 인간관계, 수많은 가르침들, 조언들, 꿀팁들… 무시무시하게 많은 것들을 잡아먹고 소화해내며 자라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고급진지 저급한지 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분명,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의 위에 기생하여 생육합니다. 그것은 성체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 구조, 자원들. 그것들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합니다. 책을 읽고, SNS에서 담론을 흡수하고, 기술을 배우고… 그 모든 문화들, 매체들 자원들은 그것이 배태된 환경의 죄업 위에 뿌리내려 자라난 것들입니다. 이를 누리고 즐기는 행위가 포식이, 포섭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노동, 자본, 기술, 사회제도, 역사, 그리고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기회들의 축적을 두 시간짜리 영화 시청으로 소화해버리는 게 폭력이 아닐 수 있을까요? 그리 말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고 가해자이니 계속해서 반성해야만 한다고 말하고는 싶지 않습니다. 이 자리는 그걸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저는 분명, 죄인이 되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죄를 저지르고 폭력을 저지르는 것, 착취를 행하는 것에는 특별한 단 맛이 있습니다. 타자를 폭력적으로 나의 체계에 포섭하는 건 즐겁고, 나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전혀 결백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자기입니다.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 점까지 포함해서 저입니다. 그 무엇을 겪건, 그 어디에 있건 언제나 자기밖에 될 수 없다면,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이야말로 가해자로서의, 착취자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써 놓고 주욱 읽어보니 굉장히 비난받을 구석이 많군요… 이런 글을 쓰지 않고 닥치고 있는 것이 예의라는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아마도 제 속에서 들려옵니다. 하지만 말이지요, 저는 육식을 할 때 즐겁습니다. 이러한 글을 쓸 때에도 즐겁습니다. 제가 그 순간, 즐거워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스스로를 단속해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아마 앞으로도 육식을 하겠지요. 제가 물려받은 자원들을 마구마구 소비해대면서 살아갈 겁니다. 문화들을 전유하고, 극단적인 말을 하겠지요? 결백하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건 꽤나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