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대신 인도에 있는 것은 좋은 느낌을 줍니다. 편안하지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기란 사람을 정말 안심시킵니다. 그러나 이내 횡단보도가 나타납니다. 길은 끊기고, 차가 켠 위협적인 헤드라이트들을 뚫고 저 편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그 한중간에서 불이 빨간색으로 바뀝니다.

가끔 그러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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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매 순간을 이런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분명 나를 안심시키던 초록불이 있었는데, 그것을 분명 확인한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도로 한가운데 공회전하는 차들 사이에 남겨집니다. 저를 위한 공간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 어떤 맥락도 나를 포용해주지 않습니다. 내 맥락이 없고 내 문화가 없고 내 집이 없습니다.

어떤 맥락들은 저를 기어코 호출해냅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퀴어, 여성, 정신이상자, 병자… 그러나 저를 환대하지는 않습니다. 제 머리채를 잡고 끄집어내 담론의 격류 속을 헤매게 만듭니다. 프라이드를 위한 문구마저도. 프라이드마저도. 나를 약탈합니다.

언제나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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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나를 언제나 포획하는 것입니다. 내가 뭐라 말해도 악을 써도 몸부림을 쳐도 그들을 때리고 짓밟아도 아무리 도망을 쳐도 결국에는 돌아가야만 할 곳입니다. 어떤 무기력감. 분명 집을 나서도 집에 갇힌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데도 방랑하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경계선에도 서 있지 않고, 입구에도 창가에도 서 있지 않고,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정처없이 떠돕니다.

그러면서도 갇혀 있습니다 그 도로에. 나의 집에.

디아스포라의 연원을 추적하는 것. 잃은 것이 언제 어디서 잃어졌는지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되찾을 곳 또한, 그것을 다시 주우러 어디에 가야하는지 또한 알게 되므로, 다시 찾을 수 있기에. 그러나 고향은 집은 되찾아지지 않지요, 아무도 그것이 언제 잃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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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읽는 당신도, 집을 잃은 아이들끼리 길 위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 또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 여전히 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정을 넘긴 새벽 밤거리를 친구와 동료와 동지들과 떠돌고 술집과 술집을 전전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집 없는 이들과 집 떠난 이들, 그들과 함께할 때에야말로 쫓기기를 멈춘다 느낍니다. 무엇으로부터? 망향으로부터!

꽤 웃기지 않습니까? 잃은 것들은 망령처럼 저희를 사냥합니다. 저를 떠나가버렸으면서, 잃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저에게 찾아듭니다. 저는 그리고 그것을 되찾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도망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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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르고 같은 이유로 집 밖에 있었습니다. 트랜스젠더라서, 따돌림을 당해서, 우울증이 있어서, 엄마가 때려서 아빠가 때려서, 돈이 없어서, 집에 아무도 없어서 집에 누군가가 있어서 집이 없어서 집이 집이 아니라서. 그러면 우리는 한시적으로 서로에게 집이 되어줬습니다. 같이 골목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비청소년 친구가 사주는 술을 얻어먹고, 노래방에 가고, 카페에서 시시덕거리고, 24시간 하는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시켜먹고 몸을 팔러 다녀오는 친구를 기다리고.

친구들과 골목과 골목을 옮겨다니며 담배를 피다가도 11시가 되면 집에 가야 합니다. 새벽 3시가 되면 그들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잘 가… 조심히 가… 들어가서 연락해… 그러면 나의 집 아닌 집으로 가야 합니다. 너도 어른이니까. 친구는 남이니까.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까 그래도 엄마가 찾으니까 실종신고 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내일 일정이 있어서… 어떤 친구는 집이 없어서 길에 남고, 어떤 친구는 집 아닌 집으로 돌아가고, 어떤 친구는 집 아닌 집에 갇힙니다.

나만의 집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스무 살 때, 만난지 한 달 된 애인과 동거하기 위해 가출했습니다. 이 년 정도 함께했지요. 저는 그것이 진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가족이고 나의 집이라고. 실상은 그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했지만, 유한했고, 잃어졌습니다. 사람이 집이었고, 제 고향이었고, 사람은 당연하게도, 움직입니다.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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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학대에 가까운 욕망의 단속. 우리는 모두 사람이 낙원이었으면 합니다. 그것을 희망하기 때문에 되새겨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낙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사람에게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낙원이 좀 영원하지 않으면 뭐 어떻습니까? 움직이면 또 뭐 어떤가요, 나도 같이 움직이면 되는 건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면 되는 건데….

많은 이야기가 집을 떠남으로써 시작됩니다. 많은 모험가가 그렇게 태어나고 멋진 모험이 시작되지요. 하지만 현모양처가 꿈이고 가족을 만드는 게 꿈인, 제 집을 찾는 것이 꿈인 아이들도 있습니다. 태어나기를 방랑자로 태어난 아이들.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도는 이들… 집도 사랑도 가족도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일종의 자기기만이니까요. 수동적이고 헌신적인 여자아이들도 그들도 그냥 집이 갖고 싶고 집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요….

무슨 말이냐면 "어서와"와 "다녀왔어"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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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나는 나에게 집이 되어주지 못하는 걸까요? 왜 저는 저에게 머물지 못하고, 자꾸만 거리를 떠돌고 방랑하는 걸까요. 왜 저는 저에게 "어서와"라고 말해주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이에게서 환대를 찾으려 드는 걸까요… 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걸까요? 집에게 타자에게 속함으로써 나됨을 면제받고 싶은 걸까요, 어떠한 파괴된 파손된 그러니까 어떤 폭력의 적나라한 흔적을 이고 살아가는 나됨을.

환대해주면 안되냐고, 나를 반겨주면 안되냐고 머물러주면 안되냐고 애원하기란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낙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이겠지요. 의존하기 싫으니까 취약해지기 싫으니까 취약함을 드러냄으로써 더더욱 취약해지기 싫으니까! 유약한 것들은 너무 쉽게 멸시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도, 저 스스로에게 강요하고는 합니다. 집 없이도 괜찮다고, 전두엽에 상처가 있어도, 집이 없어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그러니까 내버려두라고, 결핍을, 나를… 외면하라고.

그것은 언제나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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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조개와 같아서, 상처와 이물질을 결핍을 둘러싸고 무늬가 생기고 옹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또 조개와 달라서 진주같이 반짝이는 것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흉물스럽지요. 상처입은 짐승은 부수어진 조형물은 모두 흉물스럽습니다. 견디기 어렵고, 직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고통 따위 관측하지 않음으로써 없게 만들어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나는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고통으로 돌아옵니다. 외면한 나는 나를 떠났다가, 언제나 칼날으로써 나에게 귀환해 나를 살해하려 듭니다. 고통으로서 귀환합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 스스로 또한 이런 저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여지지도 않고, 죽여도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망령같은 나를 어찌하지 못해서 곤란하다고 처치곤란한 오물같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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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하려면, 세상에 나와 모험을 하고 고난을 겪고 패배하고 승리하고 전리품을 얻어 귀환하기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합니다. 집이 있어야 집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이 없습니다. 집이 없으면 모험도 귀환도 없습니다. 승리도 패배도 없습니다. 길은 어딘가로 향하기 위한 것인데, 저는 거기에 갇혀 어디로도 가지 못합니다. 저는 여행자도 아니고 모험자도 아닙니다.

언제나 디아스포라. 언제나.

내가 집을 떠난 적은 없고 언제나 집이 나를 떠난 것만 같습니다. 떠나서 영원히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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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체 언제까지 가출청소년일까요? 아직도 종종 제게 집이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제게도“어서 와”라고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걸음이 멈춰집니다.

집이 갖고 싶고 집이 되고 싶다고… 내가 집이 되어서 영원히 누군가를 맞이해주고 싶다고 집이 나를 떠날 일이 없게 하고 싶다고 계속 흐느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흐느끼는 저를 계속 외면해온 듯도 합니다.

영원히 환대해 주면 안 되나요? 단순히 방을 구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영원히 "어서 와"라고 해 주면 안 되나요? 저를 떠나는 집은 당연히 제 집이 아닙니다. 집은 기다려줘야 합니다 저를… 저를 맞이해주고 안아주고 들여보내줄 수는 없나요? 집이 갖고 싶어요. 그 집이 아니어도 됩니다. 특정한 무언가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영원히 내쫓지 않는 곳 내쫓겠다고 협박하지 않는 곳 일시적인 경유지가 아니라 저의 종착지 저를 영원히 귀속시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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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어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저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