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를 빌어 고백합니다. 마운자로를 맞았습니다. 당연한 말을 하자면, 살을 빼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체중이 좀 나가고, 이 무게를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꽤 되었습니다. 가벼운 몸을 갖고 싶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겁니다. 살이 붙은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고, 보다 미형의 체형을 갖고 싶고, 달릴 때나 계단을 오를 때 무게가 뒤에서 붙잡는 감각이 싫고… 그러나 살을 빼고 싶다는 욕구보다도 더 강하게 작동한 동기가 있다면, 자기통제욕일 겁니다.
저는 자기통제욕의 화신입니다. 여러 차례 말했듯이, 사랑도, 세상도, 신의도 저에 대한 타인의 평가도 저를 조각내어 갈취해가는 움직임들도 모두 수용하고 타협하고 포기했는데, 저마저도 저를 배신하면 제가 뭐 하러 세상을 살아가줘야 할까요.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저나 세상같은 건 내던져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몸도 통제의 대상 중 하나입니다. 어떤 형태인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모두를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염색을 하고, 탈색을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입고 살을 빼고 근육을 기르고… 마운자로를 맞는 것도 그것의 일환입니다.
저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저질러버리고야 말았다는 쾌감이 주는 만족감이 있습니다. 통제하고, 휘두릅니다. 그 원초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즐거움은 중고등학교 시절 피부에 칼집을 내던 때의 즐거움과 똑 닮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습니다. 벌어져 핏방울이 맺힌 피부나 흉이 덮여 우둘투둘해진 팔뚝 따위를 볼 때면 배부른 육식동물의 기분이 됩니다. 이것은, 이 나는 제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것을 파손시키거나, 역으로 보살필 권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저에게 가장 즉물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바로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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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부수거나 쓰다듬을 능력보다도 강력한 것은 그것을 배치하는 능력입니다. 저의 몸은 수많은 세심하고도 정교한, 동시에 야만적이고 우악스러운 조정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메디키넷*는 전전두엽 기능에 작용해 제 선천적인 주의집중력 결핍을 개선합니다. 아리피프라졸**은 도파민 수용체를 건드려 충동성을 완화시키고 병리적인 사고를 억제합니다. 리스펜***은 도파민 수용체와 세로토닌을 차단시켜 과각성과 불안을 감소시킵니다. 저는 저에게 맞는 약물들을 찾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항정신성 약물들을 복용해야만 했고, 저의 신경망패턴은 아마 그 과정들이 남긴 흔적들로 인해 반영구적으로 변형되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 복용하는 약들이 저의 뇌를 배치시키는 정동도 빼놓을 수 없죠.
이 모든 약물들이 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욕망들과 정동들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이 모양새에서 저 모양새로 옮겨져 배치되고 변형됩니다. 몸 뿐만 아니라 정신 또한, 사이보그입니다. 누더기 패치워크이고, 암흑전골****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과도한 신체개조를 하면 전자정신병에 걸려 연쇄살인마가 된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저는 신체개조도 아니고 뇌개조를 했으니 이미 화학정신병에 걸린 걸까요? 저의 천연정신병과 화학정신병이 야차를 떠서 상쇄된 걸 수도 있겠습니다.
이 너무 많은 약물들, 너무 많은 힘들이 작용하는 정신은, 어떻게 작동할지 가늠도 잘 되지 않으니 기계라 한다면 부정확할 수도 있겠습니다. 기계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고, 그 구조를 파악한다면 어떻게 작동할지도 가늠이 되니까요. 그것에 비해 약물들이 서로 겨루고 덮어써대 어떤 효과를 낼지도 모르겠는 저의 정신은 일종의 블랙박스 같기도 합니다. 그 속에 어떤 희한한 것들이 들어있는지도, 어떤 형태로 배선이 이루어져있는지도 알 길 없이 인풋이 들어가고 아웃풋이 나오는 블랙박스요.
정신 사이보그, 누더기 패치워크, 암흑전골 따위로 비유했지만서도 저는 제가 그토록 개조된 존재라는 점에서 희미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순정의 상태로 살아갔더라면 금세 제 목을 꺾어 죽어 나자빠져버렸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서일까요, 그러나 저는 생존을 업적으로 여기는 종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통제감. 제가 제 몸을 반영구적으로 변형시켰다는 사실. 머리 뚜껑을 따고 손을 집어넣어 주무르듯이 제 뇌를 주물러댔다는 쾌감. 그것은 꽤나 즐길 만한 것입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해대고 온갖 피어싱 구멍을 뚫는 바디 모더*****들은 저와 그리 멀리 떨어진 존재들이 아닐 겁니다. 저 또한 저에게 이런저런 짓들을 저질러버리고 그 모양새를 보고 만족감을 느끼니까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단 제가 저에게 무엇을 저질렀는지는 시각을 통해 눈치채기 힘들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또한, 저는 정신병자이고, 제가 저지르는 일들은 이 병을 완화시키는 활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간신히 정상성에 편입할 수도 있습니다. 정수리까지 문신을 하고 몇십개의 피어싱을 얼굴에 단 사람들과 달리, 규범적인, 기능하는 시민으로 남는 데에 부합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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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은 생각보다 보편적인 욕망일 겁니다. 성형 수술, 염색, 탈색, 다이어트, 운동 그리고 뿐만 아니라 약국에서 사 먹는 즉효성 비타민, 아침에 먹는 커피까지도. 보다 뛰어나게 기능하고 싶고, 보다 수월하게 생존하고 싶고, 보다 알맞은 형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언제나 자기에 대한 통제입니다. 약물을 통해서이든, 운동을 통해서이든 계속해서 스스로를 갱신합니다. 이 욕망과 저 정동이 놓인 자리를 뒤바꾸고, 게임 업데이트 하듯이 패치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패치됩니다. 심각한 결함을 고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새로운 기능을 넣은 걸수도 있습니다. 패치했기 때문에 없던 버그가 새로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기능하는 것, 생존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말했지만서도 정말 중요하지 않았더라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패치했는지 그러니까 살을 빼기 위해서 패치했는지, 두뇌 회전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인지, 고통스러운 우울증을 호전시키기 위해서인지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패치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겁니다.
감각합니다, 패치되는 것을, 갱신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을. 그것이 저를 보다 나은 존재로 만드는 것보다도, 그 감각 자체에 저는, 중독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메디키넷: ADHD 증상을 완화시키는 항정신성 약물의 종류, 메틸페니데이트로 구성되어 있다.
** 아빌리파이: 양극성장애 및 조현병 증상을 완화시키는 항정신성 약물의 종류, 아리피프라졸로 구성되어 있다.
*** 리스펜: 양극성장애 및 조현병 증상을 완화시키는 항정신성 약물의 종류, 리스페리돈으로 구성되어 있다.
**** 암흑전골: 일본에서 불 꺼진 방에 다 같이 모여 각자 비밀로 준비해온 재료를 넣어 완성시키는, 결과물을 알 수 없는 전골.
***** 바디 모더: Body Modder, 몸을 반영구적으로 변형시키는 행위를 지속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보통 문신을 하고 이마, 볼, 눈썹, 인중 가릴 것 없이 피어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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